'가장 아름다운 야구장', 보통의 한국인 출입 막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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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야구장', 보통의 한국인 출입 막은 이유

sk연예기자 0 10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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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타격상'으로 야구팬들에게 이름이 익숙한 이영민은 '한국의 베이브 루스'라고 불리는 한국 야구 최초의 스타플레이어다.

그는 중학 시절부터 육상과 축구, 야구에서 동시에 국내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1934년에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 등이 주축이 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의 일본 방문 경기에 일본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1930년대부터 조선인을 대표하는 야구선수였고 해방 직후 미군 팀과의 대결을 위해 결성된 첫 번째 한국 국가대표팀의 4번 타자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홈런을 기록한 타자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정식 경기장의 담장을 넘긴 홈런을 친 최초의 한국인 타자'라고 해야 한다. 야구에서 홈런이란 '담장을 넘기는 타구'가 아니라 '타자가 수비수의 실수 없이 홈으로 들어온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며, 한국에서도 야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경기에서 담장이 없거나 너무 멀거나 괴상하게 생긴 경기장의 모양 때문에 외야수들이 당황한 틈에 타자들이 홈까지 내달리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28년 6월 8일 연희전문과 경성의전의 경기에서 1회 2사 후에 이영민이 날린 1점 홈런은 이전까지의 홈런들과 달랐다. 1925년 10월에 잘 평탄화된 그라운드와 정확한 규격을 가진 한국 최초의 야구장인 경성야구장이 개장했고, 바로 그곳에서 열린 경기에서 적절한 거리에 세워진 담장을 넘겨 야수들의 접근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뒤 여유롭게 4개의 베이스를 밟은 첫 홈런이었기 때문이다.
 
홈런왕 이영민을 낳은 경성야구장
 
기록으로 확인되는 한, 한국에서 처음 야구 경기가 열린 곳은 지금 독립문이 세워진 서대문 앞 모화관 터다. 그다음은 동대문운동장이 세워졌다가 헐린 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자리하고 있는 동대문 앞 훈련원 연병장이다.

그곳에서 18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인과 영국인들이, 190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인들이 야구 경기를 벌이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는 제물포고등학교가 운동장으로 쓰고 있는 인천의 웃터골이나 구덕야구장이 지어지고 다시 헐린 부산의 대신동에서 야구 경기가 성행했다.
 
1920년 전국체전의 기원이 되는 전조선야구대회가 창설된 이후에는 배재고보 운동장이 잠시 한국 야구의 중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첫 대회 이후에도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치러진 3~6회 대회가 모두 정동에 있던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1910년대 말까지는 서울만 해도 배재를 비롯해 경신, 보성, 중앙, 휘문 등의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 그 학교들이 단순한 친선경기가 아닌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다투며 기록을 축적해가는 정식 경기를 치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전조선야구대회의 의미는 매우 컸다.

하지만 1925년 훈련원 터에 경성야구장이 지어진 뒤로는 대부분의 중요 경기들이 그곳에서 치러지게 됐다. 전조선야구대회로 시작해 종합경기대회로 확대되면서 이름도 바뀐 '조선체육대회'는 1926년 제7회 대회부터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경성운동장으로 주경기장을 옮겼다.

1921년부터 시작되어 주로 경성중학 운동장에서 치러지던 일본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오늘날의 고시엔 고교야구대회)의 조선지역 예선전 역시 1926년부터는 경성야구장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6년에는 동아일보가 창설해 서울의 4개 학교(경신, 배재, 중앙, 휘문)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한 팀을 이루어 대결하는 '4구락부연맹전' 역시 경성야구장에서 치러졌다.

해방 후 서울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나중에는 '동대문야구장'으로 불리게 된 경성야구장은 한국 최초의 정식 규격 야구장인 동시에 1982년 잠실 야구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한국 최대의 야구장으로서 한국 야구의 메카 역할을 했다. 2006년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약이었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을 위해 야구장을 철거하기로 했을 때 야구인들이 반발한 것은 학생야구 경기의 대부분이 열리던 곳이라는 현실적인 상황 외에 그곳이 가지는 그런 역사적인 의미 때문이었다.
 
한국 야구의 메카, 동대문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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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외에 용산에도 좋은 야구장들이 있었다. 1910년대 후반 만주철도주식회사가 지금의 용산세무서 서쪽 일대에 건설한 일명 '만철야구장'이 경성야구장 못지 않은 위용을 자랑했고 1950년대에는 용산 미군기지 내에 조성된 야구장이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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